천주교회/교리 교육용

하느님을 알 수 있는 인간에 관한 교리서.

성경의묘미 2024. 1. 3.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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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느님을 향한 갈망

 하느님을 향한 갈망은 인간의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다. 인간은 하느님을 향하여, 하느님께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늘 인간을 당신께로 이끌고 계시며, 인간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진리와 행복은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 인간 존엄성의 빼어난 이유는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도록 부름 받은 인간의 소명에 있다. 인간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과 대화하도록 초대받는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되고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으로 보존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결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사랑을 자유로이 인정하고 자기 창조주께 자신을 맡겨 드리지 않고서는 인간은 온전한 진리를 따라 살아갈 수 없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자신들의 역사 안에서, 그들의 신앙과 종교적 행위라 볼 수 있는 기도, 제사, 예배, 묵상 등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하느님을 찾는 길을 표현해 왔다. 이러한 표현 양식들은, 비록 모호한 점들을 내포할 수 있기는 하지만, 매우 보편적인 것들이므로 인간을 종교적인 존재라고 일컬을 수 있다. 
  • 하느님께서는 한 조상에게서 모든 인류를 내시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 또 그들이 살아갈 시대와 영토를 미리 정해 주셨습니다. 이리하여 사람들이 하느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가까이 계십니다. 
  • '우리도 그분의 자녀다.'하고 말하였듯이, "우리는 그분 안에서 숨 쉬고 움직이며 살아간다." 하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사도행전 17, 26-28)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과 이토록 친밀한 생명의 결합"을 종종 망각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심지어 명백하게 거부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태도들은 매우 다양한 근원에서 비롯될 수 있다. 곧 세상의 불행에 대한 반발, 종교적인 무지나 무관심, 현세와 재물에 대한 근심, 신앙인들의 좋지 못한 표양, 종교에 대한 적대적 사조, 그리고 끝으로, 하느님이 인간의 태도 등이다. 
"주님을 찾는 마음은 즐거워하여라."_시편 104, 3.
 비록 인간은 하느님을 잊거나 거부할 수도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찾아 행복을 누리며 살도록 모든 이를 끊임없이 부르신다. 그렇지만 인간이 하느님을 찾으려면 자신의 모든 지성적 노력, 올바른 지향, '바른 마음', 그리고 하느님을 찾도록 가르치는 다른 이들의 증언이 필요하다.
  • "주님, 주님께서는 위대하시고 크게 기림직하옵시며, 그 힘은 능하시고 그 지혜로우심은 헤아릴 길 없나이다." 당신께서 내신 한 줌 창조물인 인간이, 죽을 운명을 지녔으며, 자신이 죄와 "당신께서 교만한 자들을 물리치신다."는 증거를 스스로 지닌 바로 그 인간이 당신을 기리려 하나이다. 당신의 한 줌 창조물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당신을 찬미하고자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찬미하여 기쁨을 누리도록 인간을 일깨워 주십니다. 주님, 주님을 위하여 저희를 내셨기에, 주님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착잡하지 않습니다.

2024.01.01 - [천주교회/교리 교육용] - 천주교 교리,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의미와 역사적 사실을 알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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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느님 인식에 이르는 길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어,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도록 부름 받아, 하느님을 찾고 있는 인간은 하느님께 대한 인식에 이르는 몇 가지 '길'을 발견하게 된다. 이 길은, 자연 과학의 영역에서 얻어진 증거라는 의미로서가 아니라, 참된 확실성에 이르게 하는 '일관성과 설득력을 가진 논증'이라는 의미에서, '하느님의 존재 증명'이라 하기도 한다.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한 이러한 '길'들은 창조계, 곧 물질 세계와 인간을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 바오로 사도는 이교도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하느님께 관해서 알 만한 것은 하느님께서 밝혀 보여주셨기 때문에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_로마 1, 19-20.
  • 또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와 같이 말했다. "땅의 아름다움에 묻고, 바다의 아름다움에게 묻고, 드넓게 퍼져 가는 대기의 아름다움에서 묻고, 하늘의 아름다움에게 묻고 .... 이 모든 실재하는 것에게 물어보십시오. 모든 것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보세요, 우리는 이렇게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들의 아름다움은 하나의 고백입니다. 변화하는 이 아름다움들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신 분이 아니면 그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사람을 창조하신 하느님]

세계 : 운동과 변화, 우연, 세상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통하여 우리는 우주의 시작이요 마침이신 하느님을 알 수 있다.
인간 : 진리와 아름다움을 향한 개방성, 윤리적 선에 대한 감각, 자유와 양심의 소리, 무한과 행복에 대한 갈망 등으로 인간은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묻는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인간은 자기 영혼의 표지들을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이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영원의 씨앗은 한갓 물질로 환원될 수 없는 것" 이므로, 이 영혼의 근원은 오직 하느님 한 분 뿐이시다.
  • 세계와 인간은 자신 안에 스스로 최초 원인과 최종 목적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도 마침도 없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의 '존재'에 참여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러한 여러 가지 '길'을 통해서 "모두가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제 1원인이며 최종 목적인 실재가 존재한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 인간은 자신의 능력으로 인격적인 하느님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당신과 친밀해지도록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시고, 그 계시를 신앙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은총을 주시고자 하셨다. 그럼에도 하느님 존재에 대한 증거들은 신앙을 준비시킬 수 있으며, 신앙이 인간의 이성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줄 수 있다.

 

3. 교회의 하느님 인식

"우리 어머니인 거룩한 교회는, 인간이 이성의 타고난 빛을 통해서 피조물로부터 출발하여 만물의 근원이며 목적이신 하느님을 확실히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가르친다." 이러한 능력이 없다면 인간은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 이러한 능력이 있는 것은 "하느님의 모습대로(창세기 1,27)"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인간이 처한 역사적 조건들 안에서 이성의 빛만으로 하느님을 인식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 간략하게 말한다면, 실제로 인간 이성이 자신의 타고난 능력과 빛으로써, 당신 섭리로 세상을 보호하고 다스리시는 인격적인 하느님과 창조주께서 우리 영혼 안에 심어 놓으신 자연법에 대한 참되고 확실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본성적 능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결과를 얻기에는 많은 장애가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진리들은 감각적인 사물들의 질서를 완전히 넘어서는 것이며, 이러한 진리들이 구체적인 행동에 적용되고 삶을 형성하게 될 때에는 자기를 바치고 포기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진리들을 얻기 위해 인간의 정신은 감각과 상상력의 충동뿐 아니라, 원죄에서 발생한 그릇된 욕망들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 때문에 인간은 이러한 일들에서, 스스로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들이 거짓이거나 적어도 불확실한 것이라고 쉽게 믿어 버린다. 

 따라서,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것들뿐 아니라 "이성으로 접근 가능한 종교적 윤리적 진리들도 현재의 인간 조건에서도 더 쉽게, 확실히, 오류 없이 알기 위해서는" 하느님 계시의 빛이 필요로 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참고 문헌 : 교회 교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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